지성의 샘터

비틀린 역사관의 민낯

이성수
2020-07-17
조회수 505

뻔뻔한 역사왜곡의 현실 ㅡ독립군과 마적은 엄연히 다르다.

근래에 어떤 여변이 나서서 백전노장을 폄하를 넘어 난타수준의 언어도단을 자행하는 모습을 봤다. 한국근대사에서 가장 기본적인 지식조차 갖고있지 못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여변의 말에 호응하는 이들도 적지않은 것을 볼때 이런 결과는 조직적으로 왜곡된 역사를 주입받은 것이라고 합리적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하여 당시 간도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무장세력인 독립군과 마적을 확실히 구분지어 설명해 드리려 한다. 덤으로 김일성의 인민군이 어떻게 태동하였는가에 대해서도 입증해 드리겠다.  

 ‘간도’는 間島(‘사이’ 간, ‘섬’ 도) 압록강 상류와 두만강 북쪽 조선인 거주 지역을 일컫는 말이었다.

본래는 백두산정계비에 의해 우리 땅인뎌 청나라가 이 지역을 점거하고는 아무도 거주하지 못하게 한 조선과 청나라의 ‘사이’ 지역'이란 의미에다. 강으로 둘러싸여 섬(島)이라는 이름이 붙여진다. 이 지역에서 청나라 세력이 약화되자 함경도 지역의 조선인들이 대거 이주를 시작한다.

 바로 이곳이 초기 독립군 활동의 중심지가 된다.
초기 독립군단은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악전고투하면서도 일본군을 상대로 혁혁한 전과를 올린다. 그러나 결국 1920년대 초반에 사실상 전 부대가 궤멸된 것으로 역사가들은 보고 있다. 그렇다면  20년대 중반부터 30년대 걸쳐 이 지역에 출몰한 무장세력는 누구일까?  바로 조선혁명군으로 일컬어지는 공산주의자 세력이다. 처음에는 마적단으로 시작하여 점차 중국공산세력으로 흡수되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주로 누구랑 싸웠는가?  

 놀랍게도 그들의 목적은 항일투쟁이 아니었다. 주로 중국공산세력과 연합 전선을 전개하면서 군자금
모금에 협조하지 않는 부르주아지(지주들)를 친일파 명목으로 처벌하는 계급투쟁을 벌인 것이다.

  이 사실은 한국교회사에 보면 그들의 만행에 대한 일부 증언이 나타난다.

 당시 만주에는 감리교회와 침례교회가 있었고,시베리아에는
감리교회, 산동성에는 장로교회가 각각 목회자를 파송해 고향을 등진 조선인을 상대로 선교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25년 경 ‘동아 기독교 교회’가 습격을 당한다. 그것도 동족에 의해 무참하게 살륙당한 것이다. 이 때
동족을 피습한 이 동족이 누구인가? 바로 후에 조선혁명군으로 불리우는 마적들이다.

 1925년에 처음 시작된 교회에 대한 마적들의 약탈공격은 이후10년간 지속 되었다.1926년에는 김성주의 부친 김형직이 마적에 의해 피살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후 김성주는 14살의 어린나이에 마적단에 입단한다. 손정도목사의 도움으로 학교에 입학했지만 결국 1929년 마적부대를 이끄는 공산주의자 이종락의 휘하로 들어간다. 이 김성주가 바로 김일성이다. 이종락은 1930년 부대의 이름을 조선혁명군 길강지휘부라고 붙히고 부자들을 습격하여 살륙과 약탈을 일삼는 마적질을 계속하다가 1931년 토벌된다. 홀로 도망친 김성주는 김일성이란 별명을 붙히고 새로운 마적부대를 조직하여 혁명이란 미명으로 잔인한 마적질을 계속한다.

"1932년에는
마적 30여명이 출몰했다. 비적(匪賊)이라 불리우는 자들이었다.
이들은 간도에서 교회를 습격하여 교인들의 피부를 벗겨 죽이고, 남자의 고환을 잘라가는 잔학한 만행을 저질렀다."
이 글은 1932년 11월 9일자 기독신보 기록이다.
기독신보는 『긔독신보』(The Christian Messenger)로 표기된 신문인데 민족 대표 33인 중 한분인 박동완(朴東完)이 편집을 보던 매체이다. 이어지는 기록을 보자.
"불쌍한 난민 조선인교회에 총칼차고 쳐들어 와서
공산당 가입하라고 강요하고 싫다고 하면
무참하게 죽였다.
이런 비적질은 다음 해에도 그 다음 해에도 계속 되었다."

 이들을 누가 토벌했을까?
감리회보의 당시 기록을 살펴보자.
“...오늘 내일...하고 기다리기를 어제더니 올해(1933년) 1월 27일에 일본군 토벌대가 구해줌으로써 비족(공산당)은 도망치고... 안도를 얻게 되었습니다... 황군(皇軍) 다까모도 헌병대장에게... 감사를 금치 못하여...”(감리회보. 1933.7.10.)

어이없게도
공산당 비적에게 얼마나 처절하게 당했으면 일본지배를 피해 간도로 도망온 사람들이 일본군 대장에게 감사를 금치 못했을까?
이런 기록을 남긴 사람은 이완용 같은 친일파가 아니다. 일본을 상대로
독립운동을 했던 도인권이란 감리교회 목사다. 항일독립투쟁을 했던 분이 간도의 비적을 물리쳐준 황군을 구원자로 표현할 정도였다니....동족에게 당한 고초가 일본군 지배하에 들어가는 것을 고마와 할 정도로 지긋지긋했던 것이다. 그만큼 공산주의 마적들의 만행은 같은 동족의 가슴에 한이 서릴 정도였던 것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간도 특설대’는 1938년에 창설된다.

‘간도 특설대’가 조선인을 위한 부대였다는 소리가 아니다. 그렇다고 조선혁명군이 동족을 사랑하고 보호했다는 것도 아니다. 굳이 말한다면 그나마 간도 특설대 쪽이 좀 낫다고..... 

 간도의 ‘조선인’을 학살한 것도 공산주의자요,
‘다까모도 헌병대장’에 의해 목숨을 건지게 만든 것도 동족을 괴롭힌 공산주의자요,
백선엽이 들어갔다는 ‘간도 특설대’ 등장에 일조한 것도 공산주의자들이다.

마적질을 하던 김성주의 마적단은 1936년 동북항일연군 제2군 제3사장 전광의 휘하로 편성된다. 이때 제6사장이 김일성(진짜)이란 사람인데 1937년 만주군과의 전투에서 사망하고 이후 부대가 궤멸된다, 이때 김성주와 잔존부대원들은 만주를 전전하다가 1940년
소련땅으로 도피한다.  소련공산당은 그들을 모아 88특별여단을 창설한다. 여기서 김성주는 김일성이라는 가짜이름으로 대대장직을 맡아 정찰첩보활동을 하다가 1945년 9월 북한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이후 가짜 김일성은 소련의 비호하에 한반도의 북쪽을 차지하고 공산국가를 세우고 6.25사변을 일으킨다.
동족을 참혹하게 파괴하는 6.25전쟁을 일으킨 것도 공산주의자인 것이다.

 이것이 역사의 팩트다.
역사라는 것은 어느 한 쪽 편만 들지 않는다. 비틀린 것은 누군가 비틀었기 때문이다. 역사를 비트는 자는 균형을 잃고 자멸하고야 만다.

오늘날 어떤이들이 오해하는 것은  조선혁명군의 활동을 항일 투쟁과 동일시 한 부분이다. 실상은 마적질을 한거다. 그것도 동족을 향해...
또한 백선엽장군이 들어가 동족의 가슴에 총을 쐈다는 것만 얘기하면 안된다. 그가 친일행각을 한 자라는 사실만 부각시키는 것도 문제다. 그 상대가 일본군보다 더 잔혹하게 동족의 가슴에 총을 쏘고 피부를 벗기고 재산을 약탈해간 마적들, 바로 공산주의자들 이었다는 사실을 덮어버린채 말하는 것은 역사를 비트는 것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김일성에 대한 역사왜곡은 왜곡을 넘어 사기소설 수준이다. 당연히 김일성이라는 이름자체가 가짜이며, 그의 본질은 만주에서 공산주의에 물들어 마적질을 일삼고 동족을 살륙하던 자로서,  항일투쟁이라는 것도 조선독립을 위한 독립투쟁이 아니라 중공과 소련의 사주를 받아 공산화를 이루기 위한 항일이었다는 사실이다.

역사는 결코 사실을 숨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