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성전
예루살렘 성전은 역사상 총 3번에 걸쳐 지어졌다. 1차는 솔로몬(BC940년경), 2차는 스룹바벨(BC520년), 3차는 헤롯(BC20년)에 의해서다.
3차 성전은 개축으로 알려져 있어 총 2회 건설된 것이라 볼 수도 있지만, 헤롯이 3차성전을 지을때 2차성전을 대대적으로 개축하고 주변에 대규모 시설들을 건축했기에 3차에 걸쳐 건축되었다고 볼수도 있다.
제 1차 솔로몬 성전은 신명기 사가와 역대기 사가의 묘사가 각기 다른 점이 있어 디테일한 묘사는 포로기 에스겔의 증언을 보충해 상상하기 마련이지만, 대체로 길이가 27m, 너비 9m, 높이 13.5m 규모의 성전이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 성전은 바깥 큰 뜰과 안쪽 작은 뜰로 둘러싸여 돌과 백향목으로 울타리를 쳤고, 안뜰에는 높이 45cm, 가로 세로 90cm짜리 번제용 청동제단이, 성전 현관에는 청동바다라 불리는 지름 4.5m 높이 2.2m짜리 물두멍이 있었다고 전한다. 물론 성전 현관에는 야긴과 보아스라는 유명한 기둥이 버티고 있었다.
제 2차 성전은 느부갓네살에게 끌려갔다가 고레스 칙령(BC 538)으로 귀환한 유대인들에 의해 세워졌다. 바벨론에게 전리품으로 빼앗겼던 성전 기물까지 되찾아 돌아온 그들은 사력을 다하였으나, 북부 사마리아인들의 방해로 인해 성전지대만 놓고 더이상 공사를 진전하지 못하고 애만 먹는다. 게다가 물리적 재건 이상의 정신적 재건 곧 자신들의 정체성에 정경화를 입히느라 많은 에너지를 소진한 나머지 그 재건 규모는 보잘 것 없는 수준에 머물렀다. 터의 기초 자체가 옛 성전 수준에 못 미쳤다고 한다. 하지만 성전이 그들의 땅에 존재했던 기간으로는 앞서 1차 솔로몬 성전보다도(940-587), 뒤에 지어질 3차 헤롯 성전보다도(주전20-주후70) 더 오랜 기간을(520-20), 무려 500년동안 존속한 성전이었다. 이를 주도한 총독의 이름을 따서 흔히 스룹바벨 성전이라 부른다.
제 3차 성전은 신약성서에서 악마의 화신으로 묘사된 헤롯 대왕에 의해 BC20년에 시작되어 AD 64년에 지어졌다. 헤롯가문은 유대인이 아니었다. 이두매(에돔) 사람이었다. 에돔이 야곱과 같은 혈통이라고는 하나 아무런 예언이 없는 왕이었던 셈이다. 예언 즉 계약을 갖지 못한 왕이 계약 백성을 다스린다는 것은 언제나 앞뒤가 안 맞는 일이었다. 이 컴플렉스가 헤롯대왕으로 하여금 성전을 짓게 한것이다. 헤롯의 성전은 앞서 지은 어떤 성전들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었다. 남북길이만 약 450m의 초대형 성전이었다. 앞서 솔로몬 성전이 27m였던 것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동서로도 300m나 되었다. 벽은 약 1-5m나 되는 돌을 쌓아서 세웠다. 대체 왜 이렇게 크게 지었을까? 이 성전의 내부는 성소/지성소 제단 외에도, 이스라엘의 뜰, 이방인들의 뜰, 주랑, 여인들의 뜰 등이 있었다. 각종 공간에서 율법 학자들은 제자를 가르치거나, 토론하고, 그외 각종 액티비티를 그곳에서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성전을 다름 아닌, 사람이 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이들 3개의 성전을 솔로몬 성전, 스룹바벨 성전, 헤롯 성전, 이렇게 분류하지만 이런 분류가 가능하다.
1차 성전: 제의용 성전
2차 성전: 편을 가르는 성전
3차 성전: 사람을 위한 성전
이 시대의 성전은 어떤 성전의 모습과 가장 가까울까? 이시대에도 성전이 필요한가? 교회를 성전의 대리역으로 볼수 있는가? 교회를 성전과 비견지을수 있는가?
현대 한국교인들은 대개 헤롯 성전을 마귀의 소굴 정도로 여기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이 시대의 교회들은 제3의 성전과 가장 많이 닮았다는 사실이 넌센스이다. 헤롯 성전은 정녕 마귀의 소굴인가?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곳에서 메시지를 전했는가 하면, 스데반이 죽은 후에도 사도들은 날마다 성전에 올라가 기도를 했고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
이 시대 기독교인은 제 3성전에 대한 세 가지 오해를 한다.
첫째, 좌향적 기독교인들은 이미 제 3성전 시대가 종지부를 찍었음에도 자신들이 꿈꾸는 사회주의를 제 3성전 시대라 부르며 자신들의 이념이 실현된 성전으로서의 국가를 짓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이룬 북쪽은 금왕가 우상숭배국을 만들었을 뿐이다.
둘째, 일부 종말론적 세대주의자들 역시 이미 제3성전 시대가 진행 중인데 여전히 고토에서의 제 3성전에 대한 미션을 꿈꾸고 있다. 성전 회복이 실체적인 재건립임을 주장하면서....
셋째, 일부 이중적 기독교인들은 마음으로는 제의(기도)용 성전을 지향하면서도 육신으로는 헤롯 성전을 선호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세습 교회에 몸담고 있으면서 같은 세습교회를 손가락질 하는 사람, 동성애를 성경적이지 않다고 하면서도 동성애를 인정해주라는 묘한 말을 떠벌이는 사람,기독교인(특별히 경건을 오그라지게 주절대는)을 자처하는 정치인들의 이상야릇한 신관이다. 과연 제3성전에 하나님이 계셨을까?
예루살렘 성전은 역사상 총 3번에 걸쳐 지어졌다. 1차는 솔로몬(BC940년경), 2차는 스룹바벨(BC520년), 3차는 헤롯(BC20년)에 의해서다.
3차 성전은 개축으로 알려져 있어 총 2회 건설된 것이라 볼 수도 있지만, 헤롯이 3차성전을 지을때 2차성전을 대대적으로 개축하고 주변에 대규모 시설들을 건축했기에 3차에 걸쳐 건축되었다고 볼수도 있다.
제 1차 솔로몬 성전은 신명기 사가와 역대기 사가의 묘사가 각기 다른 점이 있어 디테일한 묘사는 포로기 에스겔의 증언을 보충해 상상하기 마련이지만, 대체로 길이가 27m, 너비 9m, 높이 13.5m 규모의 성전이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 성전은 바깥 큰 뜰과 안쪽 작은 뜰로 둘러싸여 돌과 백향목으로 울타리를 쳤고, 안뜰에는 높이 45cm, 가로 세로 90cm짜리 번제용 청동제단이, 성전 현관에는 청동바다라 불리는 지름 4.5m 높이 2.2m짜리 물두멍이 있었다고 전한다. 물론 성전 현관에는 야긴과 보아스라는 유명한 기둥이 버티고 있었다.
제 2차 성전은 느부갓네살에게 끌려갔다가 고레스 칙령(BC 538)으로 귀환한 유대인들에 의해 세워졌다. 바벨론에게 전리품으로 빼앗겼던 성전 기물까지 되찾아 돌아온 그들은 사력을 다하였으나, 북부 사마리아인들의 방해로 인해 성전지대만 놓고 더이상 공사를 진전하지 못하고 애만 먹는다. 게다가 물리적 재건 이상의 정신적 재건 곧 자신들의 정체성에 정경화를 입히느라 많은 에너지를 소진한 나머지 그 재건 규모는 보잘 것 없는 수준에 머물렀다. 터의 기초 자체가 옛 성전 수준에 못 미쳤다고 한다. 하지만 성전이 그들의 땅에 존재했던 기간으로는 앞서 1차 솔로몬 성전보다도(940-587), 뒤에 지어질 3차 헤롯 성전보다도(주전20-주후70) 더 오랜 기간을(520-20), 무려 500년동안 존속한 성전이었다. 이를 주도한 총독의 이름을 따서 흔히 스룹바벨 성전이라 부른다.
제 3차 성전은 신약성서에서 악마의 화신으로 묘사된 헤롯 대왕에 의해 BC20년에 시작되어 AD 64년에 지어졌다. 헤롯가문은 유대인이 아니었다. 이두매(에돔) 사람이었다. 에돔이 야곱과 같은 혈통이라고는 하나 아무런 예언이 없는 왕이었던 셈이다. 예언 즉 계약을 갖지 못한 왕이 계약 백성을 다스린다는 것은 언제나 앞뒤가 안 맞는 일이었다. 이 컴플렉스가 헤롯대왕으로 하여금 성전을 짓게 한것이다. 헤롯의 성전은 앞서 지은 어떤 성전들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었다. 남북길이만 약 450m의 초대형 성전이었다. 앞서 솔로몬 성전이 27m였던 것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동서로도 300m나 되었다. 벽은 약 1-5m나 되는 돌을 쌓아서 세웠다. 대체 왜 이렇게 크게 지었을까? 이 성전의 내부는 성소/지성소 제단 외에도, 이스라엘의 뜰, 이방인들의 뜰, 주랑, 여인들의 뜰 등이 있었다. 각종 공간에서 율법 학자들은 제자를 가르치거나, 토론하고, 그외 각종 액티비티를 그곳에서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성전을 다름 아닌, 사람이 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이들 3개의 성전을 솔로몬 성전, 스룹바벨 성전, 헤롯 성전, 이렇게 분류하지만 이런 분류가 가능하다.
1차 성전: 제의용 성전
2차 성전: 편을 가르는 성전
3차 성전: 사람을 위한 성전
이 시대의 성전은 어떤 성전의 모습과 가장 가까울까? 이시대에도 성전이 필요한가? 교회를 성전의 대리역으로 볼수 있는가? 교회를 성전과 비견지을수 있는가?
현대 한국교인들은 대개 헤롯 성전을 마귀의 소굴 정도로 여기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이 시대의 교회들은 제3의 성전과 가장 많이 닮았다는 사실이 넌센스이다. 헤롯 성전은 정녕 마귀의 소굴인가?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곳에서 메시지를 전했는가 하면, 스데반이 죽은 후에도 사도들은 날마다 성전에 올라가 기도를 했고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
이 시대 기독교인은 제 3성전에 대한 세 가지 오해를 한다.
첫째, 좌향적 기독교인들은 이미 제 3성전 시대가 종지부를 찍었음에도 자신들이 꿈꾸는 사회주의를 제 3성전 시대라 부르며 자신들의 이념이 실현된 성전으로서의 국가를 짓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이룬 북쪽은 금왕가 우상숭배국을 만들었을 뿐이다.
둘째, 일부 종말론적 세대주의자들 역시 이미 제3성전 시대가 진행 중인데 여전히 고토에서의 제 3성전에 대한 미션을 꿈꾸고 있다. 성전 회복이 실체적인 재건립임을 주장하면서....
셋째, 일부 이중적 기독교인들은 마음으로는 제의(기도)용 성전을 지향하면서도 육신으로는 헤롯 성전을 선호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세습 교회에 몸담고 있으면서 같은 세습교회를 손가락질 하는 사람, 동성애를 성경적이지 않다고 하면서도 동성애를 인정해주라는 묘한 말을 떠벌이는 사람,기독교인(특별히 경건을 오그라지게 주절대는)을 자처하는 정치인들의 이상야릇한 신관이다. 과연 제3성전에 하나님이 계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