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의 샘터

배도 우상 신상에 대한 해석

이성수
2018-01-06
조회수 202
배도는 ‘아소 세팀’(עשה־סטים), 급선회 란 뜻이다. 갑자기 방향을 바꾸는 것이 배도자의 특징적 행위다. 헬라어에서는 이 ‘아소 세팀’을 일종의 침범죄(παράβασις)로 해석한다. 침범죄란 남의 집 담을 넘어가는 행위를 뜻한다.

우상과 신상이라는 단어는 성경에는 없는 단어다. 데무트(דְּמוּת)와 첼렘(צֶ֫לֶם)이라는 용어를 쓰는데 이는, '모양과 형상'이라는 뜻이다. 이를 우상과 신상으로 번역한 거다. “너는 신상을 부어 만들지 말찌니라”(אלהי מסכה)ㅡ할 때, 형상을 뜻하는 "첼렘"을 사용했다.

배도, 우상, 신상을 현대에 적용하려면 정교한 석의가 필요하다.

우선 신상과 우상에 대한 구약적 이해를 감안해보면 기독교는 원천적으로 십계명 중에서 제 2계를 침범한 것이었다. 예수님은 이미 에이코나(εἰκόνα) 즉 형상이시기 때문이다. 이 파격적 침범 덕분에 인자하게 생긴 배우의 사진이나 이미지를 걸어놓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여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가톨릭의 성상에 대해서는 손가락질을 한다. 단지 스타일의 차이가 배도의 경계가 아니란 방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담을 넘는 침범죄(עשה־סטים)가 주로 종교보다는 이념을 타고 나타난다. 이 죄는 이를 테면 남한 국민이 북한과의 영토적 경계를 넘어섰을 때 받는 처벌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아니면 그 반대의) 그러나 정작 남한 영토 내에서는 저쪽의 이념과 사상이 창궐하고 있는 실정이다. 담을 좀 넘는게 무슨 죄냐ㅡ하는 발칙함이 그 담을 지킬 의무와 책임을 부여 받은 행정/입법부를 중심으로 발동되고 있다. 종교는 도리어 이를 따라가는 형국이다.

어떤 종교보다도 침범죄에 민감해야 할 기독교, 특히 개신교가 이 이념의 무차별적 재세례 행위에 적극 가담함으로 그 배도의 음란성을 선도하고 있다.

이것이 이시대의 배도이다.

이런 배도의 죄는 신약에서 아포스타시아(ἀποστασία)라는 어휘를 통해 보다 선명하게 정의되었는데, 탈 기독교뿐 아니라, 탈 이념, 탈 당... 그 모든 방향을 '다시' 트는 행위를 일컫는다는 사실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도 말 할 것이다.

그럼
루터도 아포스타시아가 아니냐,
바울도 아포스타시아가 아니냐ㅡ고...

아포스타시아의 진정한 의미는 이것이다.

히브리서에 나오는 한 대목을 참조하면,
“한 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회개케 할 수가 없나니ㅡ”

우리는 우리 자신이 스스로 이교도 민족인 탓에 이 회개 불가의 상태를 단지 ‘세속으로 되돌아가버리는’ 행위를 뜻하는 줄 알지만,
본래 이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가 다시 유대교로 되돌아간 자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아포스타시아란 말은 일종의 ‘이혼’을 뜻하는 말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이혼’이란 단순한 이혼이 아니라(결별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미 결별을 하여 서로 다른 배우자와 다른 길을 가고 있다가, 버리고 '또다시' 합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즉 루터나 바울이 1차 결별한 행위를 아포스타시아라 하는 게 아니라,
루터가 다시 가톨릭으로 회귀했을 때,
바울이 다시 유대교로 회귀했을 때를 아포스타시아 곧 배도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시대의 배도란, 결합(통합, 통일)의 원천 불가의 의미라기보다는 그 결합의 방법의 문제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하므로ㅡ.

교황께서 루터 칼빈에게 투항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저쪽의 물건이 남한에 투항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