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의 샘터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이성수
2018-01-15
조회수 181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이 책은 일본의 45살 먹은 철학자 아타로 사사키의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이 상당히 흥미롭다. 그리고 공감된다. 현대의 젊은 크리스찬은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다.

이 책에서 가장 충격적인 글은 기도하는 그 손을 잘라라는 제목자체이다. 뭐하자는 건가? 야타로는 인류역사안에서 일어난 개혁,혁명,격변이 어떻게 가능행ㅎ는가? 에 대한 기원을 밝히고자 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읽기"였다. "읽기"가 혁명이라고? 우리가 그토록 우습게, 심지어 하찮게 여겨왔던 "읽기"가 개혁이라고?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이런 생각으로 한줄한줄 읽어 내려가면서 점점 무너지는 내 아집.....

특히 루터의 개혁을 "성서읽기"의 결과물이라고 평가하면서 읽기가 곧 혁명이라고 선언할때 두손 들었다. 200%맞는 말이다.

좀 읽어보시라.


《책요약》


[니체나 르장드르나 들뢰즈나 라캉이 있어주어 다행이다. 그들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저는 대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을 거다. 무엇을 쓰면 좋을지 몰랐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좋을지 몰랐을 거다. 발터 벤야민이 말했다. "밤중에 계속 걸을 때 도움이 되는 것은 다리도 날개도 아닌 친구의 발소리다."라고요. 발소리를 들어버렸던 것이다. 도움을 받아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의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 어쩌면 아무한테도 들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발소리를 내는 것조차 거부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발소리를 내지 않고는 배겨나지 못할 터이다. 들려주려고 하지 않으면 안 될 터이다. 한 발짝이라도 좋으니까.  


 첫째날, 무슨말을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둘째날., 드디어 루터의 성서를 읽고 다시 쓰는 일이 바로 혁명이었구나하고 탄식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셋째날, 서로마제국이 멸망해가는 시대에 무함마드와 하디자에 의해 이슬람은 탄생하였다. 그는 대천사 가브리엘에 의해 읽고, 쓰게 된다.

원리주의는 읽고 쓰지 않는다. 읽지 않는 것은 사람을 죽인다. 나치와 옴진리교는 같은 사고를 한다..즉, 세계와 함께 자살하는 것이다. 절대적 향락이다. 그러나, 내가 죽어도 세상은 계속된다.


넷째밤. 로마법 대전을 발견하고 교회법으로 발전해나가고 근대국가의 기원이되었다. 중세 해석자 혁명에서의 그리스도교 공동체, 주권, 영토, 국민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거기서 근대주권, 관료제, 실증주의, 회사나 협동조합, 자본제,법 내셔널리즘이 싹텄다. 즉, 중세해석자 혁명은 정보기술혁명이었다.

읽는다는 것은 고쳐 읽는 것이다. 즉 고쳐 쓰는 것, 쓰는 것이다.

모든 근대화의 과정에서 교회가 가장 최후까지 넘겨주지 않으려고 했던 것, 세속국가에게 넘겨주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교육'이었다. 지금도 종교단체가 교육에 종사하려고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교육이 의례고 또 니체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훈련'이며 '훈육'이기때문이다. 의례성의 근원은 예술이고, 의례가 하는 일은 '예의범절'이다. 한 사회에서 신체를 미의 한 예로서 단련하는 것이다. 통치와 관련된 것은 정보화된, 객관화된 문서뿐이라는 사고는 이미 무효라는 것을요. 우리는 스스로를 춤이나 노래나 낭송이나 시나 회화나 영화에 의해 통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섯째 날, 드디어 종말론적인 사고에서 벗어나라고 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기에 읽고 쓰라고 한다. 그렇게 혁명은 시작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가 특권적인 시작이나 끝이고, 자기가 살고 있는 동안 역사상 결정적인 일이 일어나주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병든 사고의 형태가 있다. 이런 병든 생각에서 벗어나  읽는 것과 쓰는 것이 지금이 아니라 우리 사후에라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혁명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