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의 샘터

■평창의 하늘을 향한 애가(哀歌)

이성수
2018-02-17
조회수 223

오랫만에 글 올린다.


평창올림픽 개막식은 여러가지면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최종성화점화자로 등장한 김연아의 모습이라든지 1218대의 인텔 드론이 LED조명을 밝히며 집단군무를 펼친 것은 오랫동안 기억될 장면이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본다면 우려할 수밖에 없는 내용들이 있다. 올림픽축제 자체가 담고있는 이신적 요소들은 차치하고라도 개막식 공연에 나타난 도깨비와 인면조의 모습, 울려퍼진 '이메진'은 한민족 전통과 결부하여 민족적 정체성을 부각시키는 근거로 끌어왔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아시다시피 도깨비는 민간신앙에서 믿어지고 있는 초자연적 존재 중의 하나다. 삼국유사에도 기록되어 있다. 우리의 인식속에는 장난을 즐기고 인간이 상대할수 있을만큼 미련하기도 하고 신통력으로 사람에게 유익을 주기도하고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모습으로 친숙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도깨비의 속성은 음귀로서 빛을 싫어하고 비와 안개 낀 날과 밤중에 주로 활동하다가 닭우는 소리와 함께 사라지는 존재다. 일각에서는 도깨비의 기원을 치우천왕으로 보기도하는데 전쟁의 달인으로 일컬어지는 그의 기상과 신적능력에서 기인하여 도깨비의 신출귀몰함을 현시하려는 것일게다.


평창에서 시연된 도깨비 난장은 도깨비의 해학적, 정서적,예능적 끼와 흥의 요소를 민족정체성과 결부시키기 위한 시도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마귀의 수하에 불과한 음귀를 우리민족과 매우, 아주, 친숙한 존재로 부각시키는 ㅡ그것도 세계인이 지켜보는 올림픽 개막식에서 ㅡ 의도는 무엇이며 그 주모자는 누구일까?


인면조(人面鳥)는

말 그대로 사람 얼굴을 한 새의 형상이다.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 있다 하는데 이런 하이브리드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건 아니다.


호머의 오디세이에도 사람 머리를 한 새의 신화가 등장한다. 바로 사이렌신화다. 인간 존재의 한 원천으로 소개하는 이집트의 바(Ba)도 역시 사람 머리를 가진 새의 형상이다. 앗시리아의 쉐드(Shed)도 BC 800년에 등장하는 사람 머리를 한 조류이다. 그런데 쉐드(שֵׁד)는 히브리어로 악마란 뜻이다.


이는 신화적 내세관만이 아니라 실제 원시시대 시체매장 데코레이션에서도 발견되는 도상이다. 일종의 동물 토템과 샤머니즘이 결합된 사상에 기인한 것으로, 인간과 동물의 특징을 결합함으로써 다양한 동물의 힘이나 속성을 통해 내세를 꾀하는 미개한 인간의 종교성이라 할 수 있다.


이집트 내세관에 있어 사람이란 카(Ka)·바(Ba)·아크(Akh)의 결합체를 일컫는 존재인데, 사람이 죽었을 때 부활이란, 이 ‘카’가 ‘바’와 다시 합칠 때 ‘아크’로 부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영혼이 (남아있는)육체성과 결합할 때 정신성이 된다는 것. 이때 바(Ba)라는 인면조/ 새(의 힘)가 작용을 일으킨다고 믿었던 것이다. 바가 없으면 부활을 못한다. 그래서 파라오들은 그토록 무덤과 미이라에 온 힘을 기울인 것이고 그 증거가 피라미드와 룩소 킹스밸리에 있는 왕들의 무덤들이다.


그리스 신화에 보면 인면조인 사이렌 신화가 나온다. 사이럴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여 사람들을 미혹한다. 오디세이는 사이렌을 통과하기 위해 부하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게 하고 자신의 몸은 돛에 묶으라 시키고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를 풀어주지 말라 명령한다.


“내 노래를 들으면 너를 고향에 데려다 주겠노라~”고 유혹하는 인면조(人面鳥) 사이렌에게 속아 많은 배가 난파했다. 그런데 오디세이는 왜 딴 사람에게는 귀를 막으라고 했으면서 자기는 귀를 안 막고 몸을 묶은 것일까? 그게 사뭇 궁금했다. 자기도 귀를 막으면 될 걸....?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는 이르기를, 사이렌은 이때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구태의연한 (노래를 들려주는) 전법을 바꾸어 침묵으로 공격을 했다는 것이다. 오디세이는 그걸 갈파했다는 것이다.


"침욱의 전략"! ?


미련한 인간은 대개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반응하기 때문에 위기에 빠진다. 그래서 귀를 막는것이 상책이라고 판단하고 귀를 꽉 틀어막고 거기서 나오는 침묵으로 위기를 건너려 한다. 문제는 들어야할 소리도 듣지 못하기 때문에 더 큰 위기에 봉착한다. 귀를 막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오직 이성적이고 깨어있는자만이 '듣고' 분별과 통찰로 반응한다. 오디세이는 침묵의 소리를 듣는 고통보다 자기 귀를 틀어막은 침묵의 우둔함을 더 참을 수 없었기 때문여 몸을 묶고서라도 침묵의 소리를 듣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귀를 틀어 막은 자들은 고상한 것 같은데 실상은 미개인이며,오직 들을 수 있는 자만이 이성과 지각을 갖춘 자인 것이다.


이메진은 1971년 발매된 존 레논의 앨범집 타이틀이다. 문화예술분야에서 일어난 사타니즘과 관련된 말이 많은 곡이다. 마치 뱃사공을 유혹하는 인면조 사이렌의 노래처럼 인간의 마음을 공,허,무로 몰아가는 세속음악의 대표주자가 레논 아닌가? 그 많은 노래중에 왜 하필 이메진인가? 아마도 그(?)가 목적한 것이 이 노래와 부합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체 무엇을 상상하고 있길래...?


이것이 한국땅 한민족에게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아직도 듣고도 모르겠는가?


대한민국 청정지역 평창에서

세계를 향해 도깨비가 난장을치고 인면조가 날개짓을 하며

존 레논의 '이메진'이 울려 퍼졌다.


이 백성이 주의 말씀을 듣지 않음이 죄요 사이렌 소리에 유혹당함이 좌초의 시작이다.

오호 통재라!

깨어라 하나님의 자녀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