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의 샘터

역설의 역사

이성수
2018-03-05
조회수 212



충청권 개화의 시점을 따진다면 1903년 천안에 경부선 철도가 개설된 시점으로 볼수 있다.

그러나 경부선 철도가 수탈을 위한

일제의 전략적 인프라였던 사실은역사의 역설이다.

그러나 또다른 역설은 철로가 없었다면 소작농은 수백년은 더 양반의 노예로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길 중의 모든 길로 통하는 ‘길’을 가지고 강력한 제국의 힘과 통치력과 부를 끌어 모았던 로마는 그 ‘길’ 때문에 붕괴한다. 이 또한 역설의 역사다.

이러한 역설의 역사는 독립운동과 민족주의가 결국 공산주의자들에게 이용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민족을 위한 애국운동이 오히려 민족을 도탄에 빠트리는 역설적 상황으로 뒤틀린 것이다.

역설의 역사는 또 있다. 1989년 남북대학생청년축전에 김일성의 초청을 받아 평양에 간 임수경에 대해 당시 북한의 청년이었던 탈북기자 강철환은 그때의 충격파를이렇게 회고한다.

"임수경은 북한 주민들, 특히 동년배 북한 청년들에게 엄청난 충격을주었다고 한다. 그녀의 행동과 옷차림과 헤어스타일은 유행이 되기까지 하였는데, 북한 당국에 의해일절 금지되었다가 반팔 티셔츠만다시 허용되었다." 강기자는 수용소로 끌려갈 각오를 하고 임수경을보기 위해 평양에 몰래 들어왔는데당시 평양의 청년들에게는 임수경신드롬이 강타하고 있었다고 한다.

청년 임수경이 반팔 티셔츠로 북한에 강타시킨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임수경이나 그녀의 입북을 기획했다는 청년 임종석(현 대통령 비서실장)이나, 초청한 김일성은 임수경 입북을 통해 북한체재의 우월성을 널리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 역설의 역사가 시사하는 바, 임수경을 통해 북한사회에 던져진 것, 그것은 바로 ‘자유’였던 것임에 틀림이 없다.

요즘 맑시즘에 입각한 개헌안이 청와대에서 만들어 졌다고 한다. 내용중에는 맑시스트들의 전매특허인 성혁명과 문화혁명의 지침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들, 가령 동성애를 인정하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도대체 이 정권의 배후는 누구인가? 무슨 목적으로 이런 짓을 하는가? 분명한 사실은 촛불로 잡은 권력은 촛불로 망하고 동성애로 흥한 권력은 바로 그 동성애로 붕괴될 것이다.

충청도에 친동성애 인권조례를 도지사가 살짝 집어넣고는 시치미 떼고 있다가 딱 걸렸다. 그리고는 자기는 친동성애 아니라고, 동성애 반대한다고, 조례안에는 그런 내용 없다고 거짓과 위장술을 쓰다가 점잖게 살던 충청도 교회와 목회자들의 공분을 사서 결국 폐지운동이 벌어졌고 민심을 파악한

도의원들이 도의회에서 폐지결의했다. 이과정에서 천안지역의 도의원 이모씨,김모씨는 지성의 한계를 드러내는 무식하고도 저속한 발언을 해댄다. 그들로 인해 충남의 수부도시 천안 수준이 땅에 떨어졌다. 왜? 그런 수준이하의 인물을 도의원이라고 뽑은 시민들의 수준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또한 역설의 역사다. 자신들의 지적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해 나선것인데 결과는 저급한 지적수준을 드러내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지사라는 분은 한술더

떠서 폐지에 대한 재의를 신청했다. 이 사람은 역설의 역사에 대해 무지한가보다. 차라리 쿨하게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도민들께 심려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앞으로 다시는 국민이 싫어 하시는거 안할랍니다. 하면 아 저분 역사의 역설을 아는 고수구나 하고 많은 사람들이 다시 봤을 거다. 그 양반이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자신이 비도덕적인 삶을 살기 때문에 죄에 대해 둔감하든지, 비틀린 가치관때문에 자기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중잣대를 가지고

살든지, 아니면 정치중독자가 되어

권력을 위해서라면 난 무엇이든지 할수 있다는 것인지, 아무튼 지금 충청도 목사들은 분노의 열정에 불타오르고 있다. 역사에 무지한 사람 덕분에 양반의 고장이 들썩거리는 역설적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것이다.

게다가 이 양반 금단의 열매를 건드렸다. 바로 기독교를 공격한 것이다. 개신교 블락을 까부수려고 이상한 패거리를 등장시키기까지 하는 것은 전형적인 맑시스트들의 위장 교란수법이다. 그러나 결국 자기 정체만 들통나는거 아니겠나? 동성애권력은 결국 성적타락에 의해 막을 내리게 되리라는 역설의 역사를 전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네오 맑시스트 사회주의는 구조적으로 친 동성애의 길을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가 없게끔 되어 있다. 극인본주의 우상숭배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데 이것이 피차 간에 ‘길’이 될 것이다. 이것이 역설의 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