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의 샘터

우리사회 인문학의 불편한 진실

이성수
2018-01-13
조회수 510

21세기 들어 우리사회에 불어온 인문학의 정체는 무엇인가?

人文(the Humanities)이라는 명칭이 가리키듯 언어·문학·역사·철학, 등을 모두 통틀어 대개 ‘보편학문’이라 한다. 그러나 인문의 전반적 발달 범주에서 보면, 인문학은 단연, 사전학(lexicography)이다.

인문학이 서구에서 더 많이 발전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이것이다. 사전의 대가로 불리는 제임스 프레이저James George Frazer)는 1890년에 The Golden Bough: A Study in Comparative Religion라는 대작을 저술했는데 여러 민족의 생활양식 전반을 다룬 시시콜콜한 내용을 무려 13권 짜리로 펴냈다. 그 이전까지는 그리스 신화 속에만 갇혀 있던 신(神)들이 이 렉시콘 덕택에 실존 세계로 살아나오게 된다.


또한 빌헤름 분트(Wilhelm Maximilian Wundt) 라는작가는 민족의 언어 ·풍습 ·종교 ·예술에 관해 저술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1900년대에 시작한 Völkerpsychologie(Folk psychology)라는 대작이 20년에 걸쳐서 10권으로 집대성되었다.


앞서 프레이저의 저술이 神들의 정체를 밝혀내었다면, 분트는 그 神들이 민족의 정신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활동했는지, 모든 사람 공통의 정신세계를 라이브러리화 한 작업이었다.


만약 이 두 사람의 렉시콘이 없었더라면, 지그문트 프로이트(S. Froud)도 없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없었다면 인류사의 발전은 아마 100년은 뒤쳐지게 되었을 것이다. 수많은 여성이 거울이나 보면서 살았을 것이다. 수많은 여성이 거울밖으로 뛰쳐나온 덕택에 기술은 한층 빠른 속력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인문학의 발전은 문과적 발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기술의 발전으로 직결되었다. 인문속의 자극이 언제나 새로운 기술로 나타나는 까닭이다.


당연히, 서구에 프레이저, 분트, 프로이트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이들은 일부 예시일 뿐, 동시대 서구의 수많은 인문학 종사자들이 있었지만, 하나 같이 그들의 과업이란 렉시콘(사전) 작업이었던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서구의 공과적 기술 발전은 다 이 사전들의 부산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사전작업이란 매우 고된 작업이다. 사전의 독자란 사실상 없는 것이며, 독자가 없으니 알아주지도 않을 뿐더러, 그렇다보니 무엇보다 경제적인 문제가 뒤따른다. 일반 개인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작업이기도 하다.

동양의 경우 고대문명을 주도하다가 근현대 서구의 기술발달에 밀리게 된 이유는 이 힘든 렉시콘작업을 소홀히 했기 때문일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현재 인문학적으로 올스톱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지금 돌아다니는 것은 입만

살아있고 눈과 귀를 호리는 짝퉁인문학이다. 이는 다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이념 영화가 인문행위의 최고요 전부인 것처럼 판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재미와 흥미의 옷을입힌 아바타만 있을 뿐이다.

둘째는 우리시대 최고의 라이터들은 사전 편찬자가 되기보다는 다들영화 배우처럼 군다.인기에 영합하는 속물이 어찌 선비가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