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의 샘터

십일조를 꼭 해야 하는가?

lee seongsu
2018-05-11
조회수 2297

 요즘 십일조에 대하여 말이 많습니다. 구약시대의 산물이다, 성즨시대의 규려일뿐이다. 신약시대 예수님은 십일조를 하라고 하신적이 없다 등등 십일조 무용론, 폐지론이 난무합니다. 신약 성경에 유일하게 예수님이 한번 언급하신 십일조가 유일한 신약 성경의 근거이다 보니, 여러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십일조 폐지론이 상당히 힘을 얻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 (눅 11:42).

유대인들은 밀, 보리, 포도, 무화과, 석류, 감람, 꿀 등 땅에서 거두어 드린 소득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런데다가,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정원에서 가꾸는 박하와 운향과 채소의 십분의 일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 드리는 이러한 열심이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 보다 더 중요한 공의를 행하는 것과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외면했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42절을 보면,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 다른 주장인 십일조는 구약 율법시대에 성전에서 제사장들을 위해 만든 제도일뿐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교회 신자들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본문에서 십일조를 언급한 것은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만 해도 예루살렘에 성전과 제사장들이 있었던 시대였기 떼문이라고 그들은 주장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예루살렘 성전은 로마에 저항하다가 AD  70년에 티투스 (Titus)장군이 이끄는 로마군대에 의해서 완전히 파괴되었고 그때부터 이스라엘의 성전과 제사장 제도가 사라졌습니다. 

다시말해서, 십일조는 성전시대와 제사장 제도가  예수님이 살아계실때까지 존재했지만 그 이후에 십일조는 더이상 필요없어 폐지되었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창세기 14장 18-20절에는 살렘왕이요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던 멜기세덱에게 아브라함이 자신의 모든 전리품 가운데 십분의 일을 바친 내용이 나옵니다 (창 14:18-20).
또 창세기 28장을 보면, 야곱이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밧단아람으로 도망갈 때, ‘하나님이 나를 지켜 주시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고, 평안히 고향 집으로 돌아오게 하시면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한 내용이 나옵니다 (창 28:20-22).

이러한 십일조는 율법에 기록된 의무조항과는 다르지만, 근본적으로 아브라함과 야곱의 자발적인 십일조 행위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담긴 믿음의 행위였습니다.
 
또 율법에 의하면 십일조는 기본적으로 땅에서 얻은 소득의 십분의 일을 성전에서 일하는 레위지파 사람들에게 주어졌을 뿐만 아니라  (민 18:24-25, 신 14:22), 매 3년마다 과부들과 고아들,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도록 명령하고 있습니다 (신 14:28~29).

그러니까, 율법에 기록된 십일조의 기본 정신은 가나안 땅에 입성한 12 지파 가운데 토지를 분배받지 못한 레위 지파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에 공평성에 입각한 것이고 고아와 과부를 위한 것이므로 사랑의 정신에 입각한 것입니다. 

그럼 초대 교회 시대는 왜  십일조 언급이 없을까요?
초대 교회 성도들은 십일조가 아니라 자신들이 가진 전부인 집과 재산을 다 팔아서 교회에 바치고 공동생활을 할만큼 뜨거운 헌신의 신앙 생활을 했습니다 (행 2:44-47).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재산의 십분의  일을 드린 것이 아니라, 십분의 구, 아니 전부를 드렸는데, 지금처럼 ‘소득의 십분의 일을 드려야 하느니 마느니’ 하는 그런 논쟁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뿐만아니라, 13권의 신약 성경을 기록한 사도 바울은 흉년으로 인해서 어려움에 처한 예루살렘 교회 신자들을 돕고자 헌금 모금에 대한 다양한 용어들을 사용하면서 자발적인 구제 헌금에 참여하도록 헌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롬, 15:25-27;  고전 16:1-5; 고후 8:1-5; 9:5-8).    

 한마디로 말해서, 사도 바울이 기록한 13권의 서신들과 다른 신약서신들은 당시 교회들의 주된 문제들과 관심사들을 중심으로 기록된 내용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들의 관심사와는 확연히 다른것입니다. 그시절에는 재정을 내놓는 헌금은 당연한 시대상황이었고 오히려 다른 것들, 우상문제나 유대인비유대인간의 갈등문제, 드려진 재정으로 효율적인 구제를 시행하는 문제, 교리와 이단문제 등이 주관심사였던 것입니다.

이런 당시의 상황에 근거하여 쓴 서신서이기에,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자신의 필요를 채워준 성도들의 후원 헌금이 하나님이 받으실 향기로운 제물  (빌4:16-19)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부 신학자들의 주장처럼 예수님 사후에 성전시대가 종결 되면서, 십일조가 함께 폐지 되었기 때문에, 바울 서신에 언급이 없다고 말하면 곤란합니다. 

예수님은 공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삶과 십일조를 하는 것, 이 둘 다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율법시대와 같이 십일조는 강제적인 헌금 조항이 아닙니다
그러나 십일조는 자원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이 담긴 믿음의 행위로  그리고 사랑의 실천(나눔)으로 지속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은 굳이 십일조를 할 필요가 없는 자신들의 정원에서 키우는 향이냐 약초로 쓰이는 허브식물들까지 십일조를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십일조에 담긴 사랑과 공의의 본래 정신은 잃고 단지 십일조라는 제도적 형식에만 매달린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정신과 제도가 함께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 무엇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하는지 돌아 보아야합니다. 그렇지만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않는 균형잡힌 신앙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믿음과 사람을 향한 사랑의 실천으로서 십일조생활을 꼭 실행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