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의 샘터

신앙위인 이야기5. 사막의 수도사 안토니(St. Anthony)

이강우
2016-11-05
조회수 82
기독교 수도 운동(monasticism)의 시조인 안토니(St. Anthony)의
삶에 대한 기록 중 가장 오래된 자료는 아타나시우스의 기록
(VITA S. ANTONI, 안토니의 생애)이다.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찾아낸 안토니의 수도적 삶과 그의 면모는
당시의 수도원운동에 영향을 주었음은 물론 오늘날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귀감이 된다.
안토니는 3세기 중엽 이집트 코마(Coma)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모에게 효성스러운 아들이었다.
그의 나이 20세 되던 해에 양친을 잃었고 그들의 재산을 상속받았다.
사도들과 초기 기독교인들의 삶을 닮기를 열망하던 어느 날, 그는 교회에서
복음서의 말씀을 들었다.
"만약 당신이 완전을 원한다면 가서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아라".
안토니는 이 말씀을 자신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오직 신앙적 훈련에 몰입하였다.
안토니도 처음에는 자기의 본거지를 떠나지 않고 수덕의 삶을 훈련했다.
그는 여러 수도사들을 찾아다녔고 그들의 삶을 연구하였으며 그들로부터
덕(virtue)을 배우기 위해 열중했다.
그 후에 안토니는 자기 마을 근처에 있는 무덤 중 하나를 수도의 장소로 택하였고
거기에서 자신을 넘어뜨리려 안간힘을 쓰고 때로는 거의 죽을 지경에까지
이르게 하였던 들짐승의 형상을 한 악마와의 투쟁을 경험을 했다.
15년간의 이런 생활 이후인 나이 35세에 안토니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부터
멀리 떠날 것을 결심하였고 완전한 고독을 찾았다.
그는 나일강을 건넜고 지금은 데르 엘 메뭄(Der el Memum)이라고 불리는
피스피르(Pispir)라는 동쪽 강 언덕 근처의 한 산으로 갔고
거기서 그 자신이 은거할 한 오래된 요새를 찾았다.
거기서 그는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지 않고 20년간을 살았다.
그는 당시에 순례자들의 방문을 받아도 그를 만나기를 거절했다
그렇지만 차츰 많은 사람들이 근처의 동굴이나 산 속에 움막을 짓고
제자가 되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리하여 밖으로 나와 자신들의 영적 삶의 안내자가 되어 달라고
간청하는 수도사들의 무리가 형성되었다.
305년 경 그들의 끈질긴 간청에 의해 은신처에서 밖으로 나왔을 때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
안토니의 모습이 여위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도 원기 왕성했기 때문이다.
안토니는 두 번 알렉산드리아를 방문했다.
한번은 피스피르에 있는 요새로부터 나온 직후, 311년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있을 때에
기독교 순교자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나왔고, 또 한 번은 350년 경 그의 생의 마지막
즈음에 아리우스주의자들(Arians)에 반대하는 설교를 하기 위해서였다.
[안토니의 생애]는 안토니가 105세에 죽었다고 기술하고 있으며,
제롬은 안토니의 죽은 연대를 356-357년경으로 보았다.
안토니의 무덤은 그를 매장한 두 명의 제자들에 의해 비밀에 부쳐졌는데
그 이유는, 자기의 유해가 숭배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숨겨지기를 요청한
안토니의 유언 때문이었다.
안토니는 최초의 은둔 수도자는 아니었지만 지금도 그는 기독교 수도주의 운동의
아버지요 설립자로 여기고 있다.
안토니의 품성은 가르침이 확실히 순수했고 비난의 여지가 없으며, 기질은 고상하고
거룩하며, 비겁하지 않고, 음울하지도 않으며, 형식에 매이지도 않았고,
독선적이지도 않았다.
안토니는 신적인 평온과 쾌활함, 그리고 담대함으로 충만해 있었고, 늘 열정적이었다.
그는 충만한 열정을 가졌으나 광신적이거나 까탈스럽지 않았고
그의 우아함과 친절과 절제와 감성은 그와 관련된 많은 글들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약 300Km에 위치한
허허벌판의 사막에 성 안토니 수도원이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