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이 뒤집어지고 있다.
뭐가 옳고 그른지 분간하기 힘든 혼돈,흑암이 세상을 뒤덮고 있다. 이런 시대를 어떤 이는 이렇게 진단한다.
“지식이 낮은 자가 높은 자를, 게으른 자가 열심히 일하는 자를, 소인이 군자를 능멸하는 그런 시간입니다. 민주주의라는 도관을 타고 가치가 역류하는 것입니다.”
동성애 합법화, 낙태 합법화, 혁명과 개혁의 가치전도... 등은 다 법의 붕괴라기보다는 윤리의 붕괴이다. 사람들의 윤리 기준이 변한 것이고 그런 사람, 특히 법을 다루는 법쟁이들의 해석과 판결로 인해 법이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윤리학 표현을 빌리자면 ‘상대주의’에 의한‘절대주의’침탈현상이다.
상대주의(relativism)란 한마디로 경험과 상황에 따라 가치 판단, 심지어는 진실의 기준까지 달라진다는 것인데, 바로 이때 절대적 타당성이 붕괴되면서 하극상이 벌어진다.
하극상! 말만 들어도 몸서리처지는 단어다. 질서의 권위로 유지되는 민주사회에서는 도저히 용납할수 없는 일이다.
문제는 그런 일을 저지르는 자들은 대개 역설적이게도
‘정의’(Justice)를 강조한다.
무척 강조한다. 적폐청산의 미명으로...
그러나 지금껏 살면서
정의로운 사람이 정의를 강조하는 거 못봤다.
이런 가증한 상황에서는 정의도 둘로 분열되어 정의끼리 하극상이 일어난다.
이때 하극상의 정의를 목적론적 정의(teleological ethic)라 부르고,
후자를 의무론적 정의(deontological ethic)라 부른다.
전자는 남자와 남자가 결혼도 하고,낙태를 피임이라고도 하고, 한마디로 ‘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하극상을 당한 의무론적 정의는 자신들이 세운 가치에 스스로가 묶여있다 하겠다. 그래서 데온톨로지(deontology)인 것이다. 데온(δέον)이라는 말은 ‘(사슬에) 묶인 상태’에서 비롯된 말이기 때문이다.
한편, 정의를 목적론적으로 외치는 자는 대개 한참을 외치다보니 어느새 저만치 가 있다. 그것은 같은 진영 내에서도 발생하기 마련이다. 한참을 외치다보니 반대편의 진영, 즉 적의 진영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무쌍한 정의가 가능한 것은 의식(αίσθηση) 스스로가 인식(ἐπιστήμη)의 도움을 받기 때문이다. (옆에서 보는 사람만 어리둥절할 뿐.)
이러한 집단상태를 심리학적으로는 사회전염(Social Contagion)이라 부르고
신학적으로는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진...’(παρέδωκεν...ἀδόκιμον νοῦν) 곧,
'유기'라 부른다.
이것이 말세지말의 특징이며 임박한 심판의 날을 예표한다.
바야흐로 '유기'의 때다.
세상이 뒤집어지고 있다.
뭐가 옳고 그른지 분간하기 힘든 혼돈,흑암이 세상을 뒤덮고 있다. 이런 시대를 어떤 이는 이렇게 진단한다.
“지식이 낮은 자가 높은 자를, 게으른 자가 열심히 일하는 자를, 소인이 군자를 능멸하는 그런 시간입니다. 민주주의라는 도관을 타고 가치가 역류하는 것입니다.”
동성애 합법화, 낙태 합법화, 혁명과 개혁의 가치전도... 등은 다 법의 붕괴라기보다는 윤리의 붕괴이다. 사람들의 윤리 기준이 변한 것이고 그런 사람, 특히 법을 다루는 법쟁이들의 해석과 판결로 인해 법이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윤리학 표현을 빌리자면 ‘상대주의’에 의한‘절대주의’침탈현상이다.
상대주의(relativism)란 한마디로 경험과 상황에 따라 가치 판단, 심지어는 진실의 기준까지 달라진다는 것인데, 바로 이때 절대적 타당성이 붕괴되면서 하극상이 벌어진다.
하극상! 말만 들어도 몸서리처지는 단어다. 질서의 권위로 유지되는 민주사회에서는 도저히 용납할수 없는 일이다.
문제는 그런 일을 저지르는 자들은 대개 역설적이게도
‘정의’(Justice)를 강조한다.
무척 강조한다. 적폐청산의 미명으로...
그러나 지금껏 살면서
정의로운 사람이 정의를 강조하는 거 못봤다.
이런 가증한 상황에서는 정의도 둘로 분열되어 정의끼리 하극상이 일어난다.
이때 하극상의 정의를 목적론적 정의(teleological ethic)라 부르고,
후자를 의무론적 정의(deontological ethic)라 부른다.
전자는 남자와 남자가 결혼도 하고,낙태를 피임이라고도 하고, 한마디로 ‘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하극상을 당한 의무론적 정의는 자신들이 세운 가치에 스스로가 묶여있다 하겠다. 그래서 데온톨로지(deontology)인 것이다. 데온(δέον)이라는 말은 ‘(사슬에) 묶인 상태’에서 비롯된 말이기 때문이다.
한편, 정의를 목적론적으로 외치는 자는 대개 한참을 외치다보니 어느새 저만치 가 있다. 그것은 같은 진영 내에서도 발생하기 마련이다. 한참을 외치다보니 반대편의 진영, 즉 적의 진영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무쌍한 정의가 가능한 것은 의식(αίσθηση) 스스로가 인식(ἐπιστήμη)의 도움을 받기 때문이다. (옆에서 보는 사람만 어리둥절할 뿐.)
이러한 집단상태를 심리학적으로는 사회전염(Social Contagion)이라 부르고
신학적으로는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진...’(παρέδωκεν...ἀδόκιμον νοῦν) 곧,
'유기'라 부른다.
이것이 말세지말의 특징이며 임박한 심판의 날을 예표한다.
바야흐로 '유기'의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