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의 샘터

성지에세이52. 여리고 유대광야 와디겔트 시험산

이성수
2019-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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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리고는 두개의 유적으로 존재한다. 텔여리고는 여호수아시대에 정복되어 진멸됐고 왕국시대에 재건됐다가  바벨론에 의해 폐허가 됐다. 이후 이곳에 기독교 수도사들과 순례객이 오면서 현재의 여리고가 된다. 우리가 흔히 가서 뽕나무도 보고 열리사의 샘도 보는 여리고가 바로 이곳이다.

 그러나 또 하나의 여리고유적이 존재한다. 이곳은 텔여리고로부터 2km 남동쪽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페르샤의 고레스가 새롭게 조성한 도시다. 알렉산더는 이곳을 자신의 개인 소유지로 삼고 헬라식 도시로 확장한다. 셀류커스왕조 시절에는 방어벽을 쌓아 요새화한다. 주전 164년 마카비혁명으로  이 도시를 탈환한 하스몬왕조는 와디겔트 계곡 입구에 헬라식 겨울궁즨을 건축한다. 하스몬왕조가 몰락하고 로마로부터 왕으로 책봉받은 헤롯대왕은 3개의 궁전으로 확장하고 와디겔트를 막아 댐을 짓고 그 물을 도수교로 끌어들여 궁전내에 풀장과 목욕탕을 만들고 성을 쌓고 요새화 하였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헤롯은 유대인 왕위계승 서열 1위인 아리스도블러스3세를 이곳 여리고 수영장에서 익사시키고 자신이 유대인의 왕임을 선포했다고한다. 이후 여리고는 헤롯에 의해  크게 번창한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여리고 위쪽 유대광야에서 40일금식기도로 시작하신다. 그리고 사잔에게 세번 시험을 받으시지만 다 물리치신다. 총독통치시대 여리고지역을  방문하신다.  바디매오를 눈뜨게 해주시고 삭개오를 변화시켜 주신다. 삭개오가 올라간 뽕나무는 돌무화과나무다. 삭개오가 왜 돌무화과나무에 매달녔을까? 돌무화과를 바늘로 찌르면 상품성이 좋은 열매가 된다. 돌무화과열매가 열릴무렵이면 바늘로 돌무화과를 찔러주슨 일군들이 고용된다. 삭개오는 최소한의 자존심이라도 상하지 않고 싶은 생각에 이 나무에 매달린 것이다. 돈많고 지역유지가 체통없이 나무에 매달릴수는 없지.  그러나 예수만난 그의 자존심은 한낱 쓰레기가 된다. 4배나 갚고 재산절반을 내놓는다. 최고의 자존심을 버린것이다. 여리고 길은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의 배경지이기도하다. 예루살렘동편에서 시작되어 유대광야를 관통하여 여리고로 내려오는 계곡이 와디 겔트가 바로 그 길이다. 이곳은 한여름에도 맑고 깨끗한 물이 흘러 그 물소리가 계곡을 가득채운다. 계곡물로 농사도 짓는다. 계곡 동편 절벽에 조지수도원이 둥지처럼 매달려있다. 

 여리고는 유대전쟁으로 파괴되어 잊혀진 도시가 되었다. 이후 수백년이 지나면서 비잔틴교회의 성도들이 여리고에 정착할때 현재의 도시를 다시 세운다. 현재 예수님시대의 여리고는 땅속에 묻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