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의 샘터

성지에세이35.에브라임 산지

이성수
2017-05-28
조회수 4081
가나안정복전쟁직후 여호수아는 분배작업을 통해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고 므낫세지파에게 길르앗산지(요단동편), 이즈르엘평원(므낫세산지),중앙산지(에브라임산지) 지역을 분배한다.
에브라임산지는 므낫세 산지와는 달리 높은 산지로서 대부분의 산지가 600- - 900 m의 산악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에브라임의 최고봉은 벧엘 근처의 바알하솔로서 그 높이가 1016 m 에 이른다.
이곳은 므낫세 산지와 대조적으로 동쪽과 서쪽이 급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계곡들도 비교적 좁은 계곡들이 되고 있다. 따라서 외부적 침입에 대한 방어가 용이한 지형을 가지고 있다.
교통로는 동서간의 도로보다는 주로 남북을 잇는 분수령을 따라 형성되어 있고 그 길의 주요 도시로는 ‘실로’, ‘벧엘’, ‘미스바’, 등이 있다.
이 에브라임 산지는 그 폐쇄성으로 북 이스라엘 왕국은 경제적으로 풍요한 므낫세 산지로 그들의 거점을 옮기었다.
에브라임산지는 유다산지와 마찬가지로 농사에 적합한 비옥한 석회암 성분의 테라로사 토양과 비교적 유다산지보다는 많은 강우량으로 아주 비옥한 곳이었다. 특히 산지에서 흘러 내려온 흙들이 충적토를 이루어서 그 농경지는 더욱 비옥해 졌다.
하지만 므낫세 산지보다는 좁은 계곡이어서 집약적인 농경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대부분 과일나무를 재배하였다.
‘에브라임’이라는 이름 자체가 ‘풍성함’을 나타내는 말로서 이스라엘 역사 초기 이곳에 울창한 삼림들은 인구 증가로 인해 차츰 벌목이 이루어졌고 대신 올리브나무, 포도나무와 같은 과일 나무들이 심겨지게 되었다.
모세는 요셉의 자손에게 이런 축복을 한다. 신명기33:13 요셉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원하건대 그 땅이 여호와께 복을 받아 하늘의 보물인 이슬과 땅 아래에 저장한 물과 14 태양이 결실하게 하는 선물과 태음이 자라게 하는 선물과 15 옛 산의 좋은 산물과 영원한 작은 언덕의 선물과
이 말은 곧 에브라임산지의 산채를 보여 주는 것이었으며 현재에도 이곳에는 많은 올리브나무 숲과 포도를 비롯한 과일나무들이 재배되고 있다.
하지만 동쪽지역의 강우량이 적고 급경사를 이루는 지역에서는 대부분 양과 염소를 방목하는 목축이 발달되어 있다.

1)Bethel (벧엘)
벧엘은 “엘의 집” “하나님의 집” 이라고 번역이 됩니다. 위치는 벤야민과 에브라임산지 사이에 위치를 하고 있고, 교부시대의 사람들, 유세비우스와 제롬은 예루살렘 북쪽으로 1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마을 이라고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로빈슨은 팔레스틴의 Beitin 으로 벧엘을 정했다. 그는 그 이름의 비슷한 점과 물리적 장소가 맞는 다는 점에 이곳을 벧엘로 정하게 됨. 지금은 벧엘이라는 정착촌이 생겼다. 벧엘은 성경에 여러 번 언급이 된다. 우선 창세기에서는 야곱이 돌베게를 베고 자는 곳으로 묘사가 되고 있다 (창 28장), 그때 야곱은 돌베게에 기름을 붇고 벧엘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다. 원래 이름은 루스라고 함.창 35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이 벧엘이라고 하는 곳에서 그 언약을 다시한번 되새겨 준다.
이후 벧엘은 북 이스라엘에게 중요한 제의적 장소가 된다. 여로보암은 이곳에 금 송아지를 세우게 되었고 레위족속이 아닌 사람으로 제사장을 삼앗으며, 절기의 날짜도 바꾸었다. (왕상 12:25-33)
이런 행동은 아마도 실로파 출신들의 제사장들에게 많은 적대감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이후 북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멸망하면서 이곳은 유다왕 요시아의 손에 들어간다. 그는 중앙 성소 종교개혁을 이룬다.
2)Shiloh(실로)
실로는‘안식의 장소’란 뜻을 가지고 있다.. 예루살렘 북쪽 약 32㎞ 지점에 위치해 있고 , 벧엘 동북쪽 18㎞ 지점에 위치한 에브라임 성읍중 하나이다. 가나안 정복 전쟁 직후 이곳에 성막을 안치했고 사사시대 부족연맹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한 곳이다. 사사 시대 말기 엘리 대제사장 때 블레셋에게 법궤를 빼앗기기 전까지 이스라엘의 중앙 성소였다(삼상 4:3). 또 동족상잔의 참변 이후 장가 들지 못한 베냐민 사람들이 동족들의 묵인하에 처녀 400인을 약탈하여 아내로 삼은 곳이다(삿 21:15-24). 엘리 대제사장과 사무엘의 거주지이고(삼상 3장), 선지자 아히야의 고향이기도 하다(왕상 14장). 예레미야 시대에는 실로가 폐허지였다(렘 7:12, 14). 성경에 등장하는 실로 사람으로는 아히야(왕상 11:29), 마아세야(느 11:5)가 있다
3)Mizpah(미스바)
‘망대’란 뜻.
야곱이 밧단 아람에서 가나안으로 귀향하던 중 외삼촌 라반과 언약을 맺기 위해 세운 돌기둥에 붙여진 이름(창 31:49). 얍복 강 북쪽에 위치한 것으로 보인다.
영토 분배시 유다 지파에 주어진 미스바(수 15:38). 위치는 분명치 않다.
요단 동편 길르앗 지방에 있는 미스바. 사사 입다가 암몬 자손과의 일전을 준비한 성읍(삿 10:17; 11:11, 29, 34). ‘라맛 미스베’(수 13:26)와 동일 지역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갈릴리 북방 헤르몬 산 인근의 미스바(수 11:3). 이 지역 거주민들은 여호수아의 정복 전쟁에 대항하기 위해 하솔 왕 야빈이 이끄는 가나안 북방 연합군에 가담하였다.
다윗이 도피 시절에 모압 왕에게 부모를 의탁하기 위해 찾은 모압의 미스바(삼상 22:3). 위치는 분명치 않다.
유다 지파와 경계를 이루는 베냐민 땅의 미스바(수 18:26). 예루살렘 북방 12㎞ 지점에 위치했다. 이곳은 초기 이스라엘의 정치·종교적 중심지로서 라마에서 멀지 않았다(수 18:25). 사사 시대에서 왕정 시대로 넘어가는 불안한 과도기에 이스라엘 최고의 지도자였던 사무엘이 전국을 공식 순회하던 중 자주 이곳을 방문하여 영적 각성 운동을 전개했었다(삿 20:1-3; 삼상 7:5, 16; 10:17). 후에 유다 왕 아사는 이곳을 요새화하였고(왕상 15:22; 대하 16:6), 유다 멸망 후 바벨론에서 파견된 총독 그달랴는 이곳을 수도로 삼았다(왕하 25:23, 25). 또 포로 귀환 후 이곳의 바사 관리들은 예루살렘 성곽 재건 역사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느 3:15).